몇년째 퇴고
***
팡! 하고 플래쉬 터지는 소리에 이어 즉석카메라에서 사진이 인쇄되는 소리가 덜걱이며 났다. 라온은 갓 뽑힌 폴라로이드 필름을 몇초간 쳐다보다가 답답하다는 듯이 휘휘 흔들었다.
"그거 흔들면 안될껄? 번진다고 들었어."
"뭐, 정말요?! 전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급하게 손을 멈춘 라온이 아직도 색이 덜 올라온 필름을 망연자실 처다봤다. 미소짓던 이든은 유의미한 차이는 없을거라며 가벼운 위로를 건내곤 아예 라온의 쪽으로 몸을 돌려앉아 소파 등에 턱을 괴곤 물음을 건냈다.
그런데 뭘 찍은거야? 사장님이요. 응?
이든은 새 제품으로 보이는 라온의 목에 걸린 즉석카메라를 훑다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새된 목소리로 의문을 표했지만, 그런 이든의 의문에도 곧바로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집요하게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라온이 곧 포기하곤 사진과 함께 이든을 바라봤다. 약간 힘이 들어간 미간이 그녀의 이유모를 결연함을 나타냈다. 아직도 색이 덜 올라 퍼렇고 희끄무리한 사진 속 구부정한 포즈로 책을 읽는 본인의 모습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라온이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 아민이를 찍은 사진은 많은데 이든은 단 한장도 없더라구요. 선명하게 색이 올라오는 과정을 기억하려는 것처럼 어느새 시선을 다시 내려둔 라온은 폴라로이드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않고 답했다. 내가 안찍어줬다고 서운해 했었나? 예전일을 되짚으며 이든은 그리운 것을 다시 발견한것 마냥 갓 찍혀 따끈한 사진의 과거를 회상하듯 초첨없는 눈으로 생각에 잠긴 라온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사장님을 몰래 찍었겠다?"
"자, 그럼 지금 허락 맡을게요. 찍어도 될까요?"
순서가 바뀐거 아냐? 라고 말을 잇기도 전에 라온은 카메라를 들어 눈에 가져다 댔다. 이든은 과장되게 허둥대며 잠깐, 기다려~ 라고 말하며 멜빵의 기능을 상실하고 바닥으로 축 늘어져 있는 우측 멜빵을 다시 어깨위로 올리곤 으쓱이며 넥타이를 조금 매만졌다. 카메라를 흔들리게 하지 않으려는 듯 라온은 후후 하곤 작게 웃었다. 그녀의 얼굴이 작은건지, 카메라가 큰건지. 이든은 반이상 가려진 카메라 너머 그녀의 온전한 웃는 얼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도 바로 앞에 라온이 서있는데도 라온의 얼굴을 상상하고있는 상황이 생경하게 다가와 묘한 기분에 젖었다. 방금 찍은 사진을 그립게 바라보던 라온의 모습이 순간 생각났다.
팡! 그 순간 플래시가 갑자기 터지고 이번에 이든은 과장 섞지 않고 깜짝 놀랐다. 하필 잠깐 멍 때리는 틈에 사진을 찍다니, 얼마나 멍청한 얼굴로 찍혔을지 생각하자 이든은 벌떡 일어섰다. 말도 안하고 찍는게 어딨어, 이건 무효야! 그의 말이 무색하게 즉석카메라는 순순히 폴라로이드를 뱉었다. 말했잖아요? 엇박이였잖아, 김치도 안했고! 또 억지부리신다. 라온은 사진을 받아들고 흔들지 않은채로 잠깐 확인하고는 이번엔 금방 옆에 서서 항의하는 이든을 바라봤다. 투털대며 성큼 다가온것과 달리 저와 눈을 마주치고는 대꾸도 없이 가만히 있는 그와 시선을 교환하다가 이내 라온은 즉석카메라로 시선을 내렸다.
"셀카라도 찍으실래요? 폴라로이드라 어려울텐데."
"아니 뭐 그렇게까진... 근데, 같이는 안찍는거냐?"
"같이요? 흐음... 본인을 잊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요. "
왠지모르게 이든에겐 그 대답이 꽤나 슬프게 들려왔기에 그는 저도모르게 맥빠진 감탄사를 뱉으며 표정을 구기곤 라온과 사무실의 문을 번갈아봤다. 어딘가 떠날 준비라도 하는양 해서.
~
그는 라온이 먼저 잡아온 손으로도 부족하다는듯 손을 고쳐 깍지를 끼곤 힘주어 잡았다. 한줌같은 라온의 손이 제 손 안에 가득차 따듯했다. 그러곤 라온이 또 미래를 유영하고 있는게 아닌지 그의 푸른 눈이 제대로된 초점으로 저를 잡아내는지 확인했다. 그 일련의 행동의 의미를 이제는 아는 라온은 부러 개구지게 웃었다.
"저 여기 있어요."